별 것 없다. 그냥 다르다는 것이다. 받아들이는 것과 그것을 곱씹어 생각해 확장, 응용하는 것과 내보내는 것이 말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해내지 암기라고 볼 수 있다. 이해한다는 것을 통틀어 인풋이라 한다면 이 범주 안에는 이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개인적인 방법론도 포함될 것이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에 학생들을 보면 외울 것을 외우며 조용히 공부하는 애들과 외울게 많다면서 징징거리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이 중 후자에게 필요한 것이 암기의 비법인 것이다. 암기법은 굉장히 많이 개발되어 있으므로 여기에 쓰는 것은 의미도 없고 글의 주제와도 맞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반복을 강조하는 에빙하우스의 망각곡선과 정보를 기억 속의 물건을 채우듯이 상상하는 이미지 템플릿이 매우 유용했었다. 그 외 암호/암구호/주문과 같은 앞 글짜만 따서 외우는 등의 방식으로 암기를 도울 수 있다, 지금도 기억하는 것이 중학교 때 외웠던 륨보슘주이다. 이 전혀 의미없어 보이는 말은 금속의 불꽃색이 칼륨은 보라색, 칼슘은 주황색이라는 의미로 여전히 기억 한 켠에 남아서 이대로라면 평생동안도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암기와는 살짝 느낌이 다르지만 인풋이라는 공통점을 지닌 이해하는 행위의 예로는 수업의 경우가 있을 것이다. 어떤 학생은 수업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어떤 친구들은 꾸벅꾸벅한다. 그 친구들은 받아들이지 못해서 갖고 있던 흥미를 잃었거나 처음부터 모종의 이유로 흥미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면 슬프게도 머리가 나쁘거나.
프로세싱, 처리, 연합 등등으로 표현되는 이 과정은 확장, 응용하는 과정이다. 예전에 수학교과서를 보면 기본문제 후에 꼭 예제, 심화, 응용 문제가 있었는데 삶이 응용문제의 연속이 아닌가 싶다. 단순히 심화문제를 풀어서 좋아하고 못 풀어서 슬퍼할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응용을 잘 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가능성이 더 높으며 따라서 더 잘 풀릴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의 응용은 머릿 속 생각까지의 응용이며 이것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밖으로 내보내어 말이나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한데 목적론적인 관점에서 처리하고 연합하는 이유는 곧 아웃풋을 정제하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사진을 보정하기 전인 RAW 파일이 가지는, 먹기 전인 생고기가 가진, 출판하지 않은 원고가 가진, (일반적인 의미의) 학습받지 않은 아이가 가진 그 오롯함을 현실에 적용 가능하게 만들어야, 출판도 하고 구워 먹기도 하고 학습시키는 등 해야 의미,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이렇게 받아들인 정보를 나름대로 가공하여 내보내는 것이 아웃풋이다. 운동신경이 안좋거나 말하는 기관이나 신경이 이상해서 표현을 못 하는 경우에는 선천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고, 어떤 사람은 귀찮다는 등의 이유로 능력 발휘를 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적성에 맞거나 노력을 해서 매끄러운 아웃풋을 만들어갈 수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프로세싱을 통한 아웃풋은 굉장히 종류가 다양하며, 서로 구분되어야 한다. 문제를 푸는 머리와, 사람을 가르치는 머리, 이해하기 쉬운 삽화를 그리는 머리, 교재 디자인을 하기 위한 머리, 표지 사진을 찍기 위한 머리는 같은 기반을 공유하지만 그 결과가 같다고 속단되어서는 안된다. 왜 굳이 이런 생각을 하냐 하면 구분이 서로 경계를 잃고 뒤섞여 생각되기 때문이다. 성적이 좋은 사람이 과외도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보통 무엇 하나를 잘 한다고 하면 다른 것도 잘 할 것이라고 덩달아 생각한다. 아 이 모든 것을 쌈싸먹는 예가 바로 외모겠구나. 위에 적은 3단계로 분류하기는 뭣하지만 극단적으로 Input에서부터 교란을 일으켜 정상적인 프로세싱을 편향되게 만드는 것이다. 하긴 세상이 그렇겠지만 어떻게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의 이해 과정이 개인에게만 국한된 문제일 수 있겠는가? 깔끔하게 차려입은 미중년인, 왕년에 전국 수석을 했다는, 좋은 목소리를 가진 교수님의 교수법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는 쉽게 생각하긴 힘들 것이다. 어쩌면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감정적인 편향을 유도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가끔 편향된 인지를 주는 요소와 실제와의 차이에서 놀라움을 받고는 오히려 호감을 자아낼 수 있겠지만...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우선 오해를 하면 안되겠다. 연애는 서로의 환상을 바탕으로 성립하기 때문에 이런 왜곡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표현은 옳지 않지만 그런 의미에서는 속이는 쪽은 한껏 머리를 굴려 아웃풋을 관리할 수 있는 것이며 속는 입장에서는 정제된 상대의 아웃풋에 더하여, 이 상대에 대한 객관적인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는 연합체에 의해서 현실적인 일부 인풋의 블러가 일어난다. 그리고 관계가 어떻게 일방적일 수 만 있겠는가? 속고 속이다가 누군가가 그 연극을 마땅찮게 생각하면 발전이든지 권태이든지 발전이 생기는 것이다.
뭐 그거야 연애 얘기라 하고 일반적으로 외모만 번지르르한 개살구들과 잘 가르치치 못하는 성적 좋은 사람들은 재평가받아야 한다. 이 개살구들이 오해만 자아내면 그것 만으로도 답답한 일인데 일부 개살구들은 스스로의 아웃풋으로 인한 상대의 프로세싱을 조종하려는 것들이 있다. 스스로도 그런 능력을 의심치 않으며 그런 자신감으로 뭉친 사람을 사람들은 따른다. 마치 종교나 투자사기와 같은 것 말이다... 그것들 보다야 귀여운 경우이긴 하지만 가르치는 사람도 기왕이면 스스로의 교수법에 대하여 한 번 쯤 고찰을 해 보았으면 좋겠다.
외모에 대한 말을 조금 길게 썼는데 내가 외모로 짭짤한 이득을 얻어왔더라면 이런 글을 쓰지는 않았겠지.
아니,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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